셰익스피어 영화
영상매체로 제작된 최초의 세익스피어 작품은 1899년 비어봄 트리가 제작한 '존왕'으로 알려진다. 비록 짧은 분량의 무성영화로 영상 작품의 완성도를 논하기에는 미흡했지만, 반응은 기대이사응로 폭발적이어서, 셰익스피어 작품들의 주요 장면들은 유렵대륙의 주요국가들에서도 앞 다투어 제작되었다. 1900년 프랑스의 새러 번하르트에 의해 '햄릿'의 결투 장면이 무성영화로 제작되었고, 이어서 1907년에는 조지 멜리에서에 의해 '햄릿'과 '줄리어스 시저'가 제작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1908년, 1910년 그리고 1914년 연이어 '줄리어스 시저'가 제작되었으며, 1913년 앙리코 구아조니가 감독을 맡은 '마크 안토니오와 클레오파트라'가 제작되었다. 미국에서도 1916년 그리피스는 비어봄 트리를 할리우드로 초빙하여 '맥베드'를 제작했고, 같은해 배우인 프레더릭 워드는 에디윈 탄하우저 감독의 무성영화, '리어왕'에 주인공으로 출연하였다.
불후의 명성을 떨친 셰익스피어 무성영화는 독일에서 스벤트 가데가 감독한 '햄릿'(1920)으로 알려져 있는데, 햄릿 역을 맡은 아스타 닐센이 극중 인물인 햄릿의 친구, 호레이쇼와 사랑에 빠지는 설정으로 주목을 끌었다.
1922년 디미트리 부초베츠키가 감독한 '오셀로'에는 에밀 자닝스가 주인공으로, 베르너 크라우스가 이아고로 각각 출연하였는데, 이 작품은 독일식 표현주의를 접목시켜 완성도를 끌어올린 최초의 무성영화로 평가된다. 본격적인 의미의 셰익스피어 영화는 1929년 미국 할리우드에서 제작된 유성영화, '말괄량이 길들이기'의 출현으로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이어서 1935년에는 막스라인하르트가 감독한 '한 여름 밤의 꿈'이 독일식 표현주의를 접목한 수준 높은 영상으로 비상한 관심을 끌었다. 이듬해인 1936년에는 폴 지너가 독일식 영사익법을 적용한 '당신 좋으실대로'에 감독을 맡았다. 같은해 조지쿠커는 레슬리 하워드와 노마 시어러를 위시하여 대거 영국 배우들을 기용한 '로미오와 줄리엣'을 감독하였다.
반복되는 시행착오에도 불구하고 1953년 개봉된 조셉 만키에비츠의 '줄리어스시저'가 작품성은 물론이고 흥행적인 측면에도 큰 성공을 거둔 작품으로 알려진다. 세계 제2차 대전 중인 1944년에 제작된 '헨리5세', 1948년에 제작된 '햄릿' 그리고 1955년에 제작된 '리처드 3세'는 로렌스 올리비에 경이 주연/감독/제작을 맡아 화제가 되었던 영화들이다.
한편, 미국에서는 오손 웰스가 실험적 영상 기법과 새로운 효과로 만든 '맥베드'가 '부두교 풍의 맥베드'라는 별명을 얻으며 세인의 큰 관심을 끌었다. 이어서 1952년 개봉된 '오셀로'에서 웰스는 원작을 재구성하고 각 장면의 명과 암, 바다와 육지 등을 '하이 앵글'과 '로우 앵글'로 찍은 카메라 기법으로 원작의 작품 세계가 근원적으로 타락한 세상에 대한 묘사라는 점을 강조했다.
1966년 웰스는 '자정에 들리는 초인종'이라는 작품을 감독했는데, 이는 세익스피어의 '헨리 4세' 제1부와 제2부, 그리고 '헨리5세'에 등장하는 폴스타프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재구성한 영화로 인기를 끌었다. 비슷한 시기에 이탈리아의 레나토 카스텔라니가 감독한 '로미오와 줄리엣'(1954)이 성공을 거두었고, 1955년 개봉된 소련 감독 세르게이 유트케비치의 '오셀로'는 극적으로 역동적으로 충분히 화려한 색조 이미지로 가득한 영상으로 찬사를 받았다. 일본의 아키라 구로사와는 1957년 '맥버드'를 재구성한 '거미집 성'을 감독했는데, 이 영화는 지역 맹주들이 군웅 할거하던 일분 봉건시대를 배경으로 하여 일분 전통극인 '노오'극의 양식을 접목한 탁월한 영화로 세계적인 찬사를 받았다.
1954년 소련의 그리고리 코진체프가 감독한 '햄릿'은 영화로 제작된 셰익스피어 작품 전체에서 가장 심오하고 완성도가 높은 수작으로 간주된다. 1966년 이탈리아 명장, 프랑코 제피렐리가 감독한 '말괄량이 길들이기'는 셰익스피어 쵝 희극의 무대 공연을 성공적으로 영상 스키린에 옮겨 담은 걸작으로 간주된다.
1968년 제피렐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의 메가폰을 잡았는데, 흥행상의 대성공을 거두며 일약 세계적인 셰익스피어 감독의 반열에 오른다. 1969년 토니 리처드슨이 감독한 '햄릿'은 1948년 로렌스 올리비에가 감독 주연했던 영화에 버금갈 정도로 높은 작품으로 평가된다.
1971년 폴란드키가 감독한 '맥버드'는 미국의 성인잡지 '플레이보이'에서 재정적 후원을 받아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는데, 이영화는 원작의 악마성과 피의 이미지 저리가 수작으로 평가된다. 같은해, 소련의 그리고리 코진체프가 감독한 '리어왕'이 비상한 관심을 불러일으켰는데, 이 영화는 1972년 서방 세계에 개봉되어 비평가들의 찬사를 받았다.
1980년 데렉 자르만이 감독한 '폭풍'은 1971년 부터 1989년 기간에 제작된 유일한 영화판 재 구성본 영화로 주목받았다. 한편, 1989년 영국의 케네스 브라나가 감독한 '헨리 5세'는 1944년 올리비에가 감독 주연한 동명의 영화를 넘어서기 위해 시도된 야심찬 도전적인 실험적 영화로 셰익스피어 영화계의 새로운 동향을 알리는 이정표적인 영화로 간주된다.
1990년 프랑코 제피렐리는 '햄릿'을 감독하면서 셰익스피어 영화에 복귀했는데, 이 영화의 주인공에는 멜깁슨을, 거투르드역에 글렌크로스등을 캐스팅하며 세인의 관심을 끌었다. 이듬해인 1991년에는 피터 그리너웨이가 감독한 '프로스페로의 마법책'에 관객들이 적지않은 호응이 있었고, 1992년에는 크리스틴 에자르 감독의 '당신 좋으실 대로'가 개봉되어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1993년 부터는 본격적으로 케네스 브라나의 전성시대를 알리는 영화, '사랑의 헛수고'가 제작되어 관객들뿐 만 아니라 학계에서도 비상한 관심을 불러 일으켰다. 1995년 올리버 파커가 감독한 '오셜로'에 브라나는 이아고로 출연하여 사악한 악한의 역할을 신들린 연기로 소화하여 관객들의 찬사를 받았다. 이듬해인 1996년 브라나가 감독 주연한 '햄릿'은 1948년 흑백영화로 제작된 올리비에의 동명의 영화의 위상을 넘어서기 위한 도전장을 던진 작품으로 관심을 끌었다. 같은해에 트레버 넌은 '제12야'를 감독하였고, 애드리언 노블은 '한 여름 밤의 꿈'을 감독하여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한편, 호주 출신 바즈 루허만이 감독한 '로미와+줄리엣'(1996)은 동시대 최고 청춘스타였던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클레어 데인즈를 캐스팅하여 흥행상 대성공을 거두었다. 1999년 마이클 호프만은 '한 여름 밤의 꿈'을 감독했다. 2000년 케네스 브라나가 감독한 '사랑의 헛수고'를 끝으로 브라나 감독의 영화는 소강상태를 맞게 된다. 같은해 저예산 영화로 제작된 마이클 앨머레이더 감독의 '햄릿 2000'에는 이단 호크스가 주인공으로 출연하여 관객들의 호평을 받았다.
[출처: 대전 예술의 전당 웹진 클래식 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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